2000 남북정상회담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2000 남북정상회담 2000年 南北頂上會談 2000 Inter-Korean Summit | ||
일시 | ||
장소 | ||
주최 | ||
참석 | ||
위원장 부인 공석[1] | ||
결과 | ||
목차
1. 개요 [편집]
2. 진행 [편집]
KTV - 2000 벽을 넘어 |
“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을 것입니다. 그러나 시작이 반입니다” - 김대중, 2000년 6월 13일 평양 도착 직후
2000년 4월 10일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[2] 박지원이 남북정상회담의 예정을 발표했다. 원래 발표된 일정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였지만, 북한 측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연기를 통보하고 남측도 이걸 받아들이면서 6월 13일로 조정되었다.
추진위원장은 박재규 당시 통일부장관이였으며, 외교부 장관, 국가정보원장, 국무조정실장, 청와대 경제수석·외교안보비서관 등이 위원에 포함됐다. 준비기획단엔 통일부 차관(단장)과 각 정부부처 차관급 및 청와대 경호처장·의전비서관 등이 참여했다.
정상 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, 금강산 관광, 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.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지속했으며, 북한은 일본,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.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및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의한 국내의 반감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.
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,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.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한관계사의 이정표로 남을 6.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. 한반도 평화 조성과 햇볕정책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,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.
3. 6.15 남북 공동 선언 [편집]
자세한 내용은 6.15 남북 공동 선언 문서 참고.
4. 여담 [편집]
-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회담의 진행과정과 성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여 일반에 공개했다. 15대 청와대 웹기록 참고.
- 그러나 이 회담은 북한에 돈을 주고 성사시킨 회담이라는 논란이 일었고, 실제로 사실로 드러났다. 대북송금 사건 문서 참고.
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-NC-SA 2.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.
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,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.
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.
접두어의 N: - 나무위키 사용자, R: -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.
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.